역대하 24:15-27

오늘 본문은 끔찍하며 슬픔과 통곡이 배어있다.  숨을 죽이고 역사의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공간에서  광경을 생생하게 직시해야 한다.   성경역사의 무대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위에는  나를 깨우기에 충분한 메시지들이 넘쳐난다그런데 오늘의분위기는 웬지  섬뜻하다과연 믿음은 무엇이고 신앙의 길은 어떤 것인가?   요하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걸출한 정신적영적 후견인인 여호야다가 죽자 그는 즉시 배교를 한다.  30세의요하스는 혼자 여호와를 섬기기에는  벅찼을까?  그렇다면 그의신실함은 가짜였을가?  아니면  영적정신적  나약함으로 인해은혜를 망각하는   변절이었을가?   여호야다와 요아스와의 관계는 어땟을까?   모든 궁금은 결과가 말해준다.  요하스는  공허속으로  그를 밀어 넣으며  하나님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성전의 방치우상 숭배의 득세그리고 신앙과 예배의 쇠퇴말씀의부재.   이것은그리스도인에게 재앙이고 치명적이다.  마지막  하나님의 보루인 스카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탄(?) 세력은 잔인함과 부정으로 다가온다스가랴를 성전 앞뜰에서 살해하는 장면은 오싹하다아벨의 의로운 피로 예수님께서는   다르게언급하신다.  의로운 자는 순교자가 되고 성전은 모욕당한다.  우리 시대에 의로운 순교자가 있는가?  교회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세상으로 기독교는 모욕당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동안  무엇을 저지른 것일까?  스가랴의  부르짓음에 하나님은 응답하신다죄의 반향과 징계로서 숫자적으로 열세인 아람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을 압도한다.  여호야다는 왕실  묘지에    요하스는 상대적으로 왕실 부근에 묻힌다 인간의 일생에 관한 삶의결과는 이렇듯 아이러니하다.

인생은 바로 잡아야  시점에 바로 살아야 한다 인생의 기회가 그렇게 자주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은  갈래 길로서 마치  닦여진 아스파트 길과 돌부리와  거친 검불로 엉켜진불편한 길의 선택이다.  하지만나는 목표가 다르다.  내가 선택한 좁은 길은 하늘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오르는데 가파르고  때로는 숨이 차지만,  멈출 수가 없다.   길에 오를수록  상쾌함과즐거움은  세상의 어떤 편하고 안일한 것에도 비교할  없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 얼마나  ,  주님께서 맡기신 소명의 삶을 충실히 감당해야  이유가 여기에 있다. 130세의 전후무후한장수의 복을 누린 여호야다는 최선을 다해 요아스를 도왔을 것이다.  마음속에 주님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던 그는 불운한 왕이었다무엇이 요아스를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나게 하였을까?    진정한 신앙은 거듭남으로 시작되고 내가 매일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그래야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에 들어갈 최소한의 공간이생긴다나라는 인간은 원래 교만하고 자기 중심적이어서  안에주를 모시는 삶이 기본적으로 인색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