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14-27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와  주인이 다시 오는  비유를 통해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신다.  깨어 있으라고  무려 세번 말씀하신다.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가 보다.   신앙은 영적인 삶이다. 나의 삶이 신앙적인가? 를 판단하는 근거는 내가 얼마나 영적인 것에 민감하고 영적인 일에 나의 삶을 맞추어 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이어서 밤에 속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말한다 (살전 5:6) .  예수님의 말씀이 사도 바울적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퍼득 정신차리게 하는 도전과 경고로 들린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함은 어떤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일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꾸준히 하나님의 방식대로 준비하는 삶일 것이다. 누군가 그리스도인은 소방관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라 말한다. 언제 불이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룩한 긴장감은 그리스도인을 깨워 있게 만드는데  세상은 하나님을 위해  옳바르게 살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도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53세에 회심을 하였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와 나는 영적인 부흥을 맛보았다.  그 후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죽을 맛(?)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교회를 섬기게 되고 부흥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신나고 즐겁고 힘들고 어려울 때 말씀을 놓지 않으려고 애썻더니,   주를 향한 마음의 열정을 잃지 않았다. 이제는 그 마음이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커가고 있다.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이 땅에서 보여주신  주님의 사역과 모습이 마음에 가득 차오른다.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 가슴이 뜨거워진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는지, 독생자 예수를 왜 이 땅에 보내셨는지가 눈앞에 펼져진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  왜 그래야 하는지가 이해되고 결심으로 다가 온다.  지난 9년간 주님께서는 훈련과 양육을 통해 나를 인도하셨다. 그것은 우리 가정을 교회로 불러 주셨고 교회를 통해 맡기신 일을 순종으로 감당하는 것이었다. 이제 또 주님께서 새로운 교회를 통해 하실 일을 기대하게 하신다.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동안 세상은 확실하고 믿을 만 하고 돈이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도깨비 방방이 같은 것이었다면, 예수를 다시 만난 후에 나의 삶은 성경과 영원한 진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세상에서 배만 불리고 소유를 늘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