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아 13장 1-27
 
포도주는 기쁨과 진노의 상징이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유다의 영적 간음으로 인해 깨어질 때 기쁨의 포도주가 분노로 바뀐다. 이 악한 백성은 여호와 말을 듣기를 거절하고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갔다라는 하나님의 호소가 썩은 베 속옷(띠)로서 나타난다.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성령님의 조망이고,  믿음의 공동체에게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나의 삶에서 말씀과 은혜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곧바로  달콤한 분노의 포도주로 채워질 것이다. 이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신앙생활에 불을 키고 영적 민감성을 갖고 조심스레 한발한발 앞으로 나가가야 한다.  하나님을 가리는 죄를 멀리하자. 죄의 흔적을 가늠하는  영적 분별력은 오직 말씀의 은혜에 속하는 삶에서 피어날 것이다.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예레미아는 주님을 대변한다. 교만에 대하여 임박한 심판의 상징은 어둠에 대해 말한다. 과연 죄의 관성에서 돌이킬 수 있을까?
 
신앙생활에 가장 큰 장애는 영적인 무지함도 문제지만,  영적인 교만이다.  이제 좀 말씀에 대해 깨달아 질 때 찾아오는 것은 인간의 교만함이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데  나의 교만의 진앙지는 선악과 사건에서 찾아야 한다.  과연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 하더냐? 나에게 끈임없이 물어보는 질문이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지 말자.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자.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길만이 나의 겸손을 다스리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말씀의 옳바른 깨달음과 바르고 건강한 적용을 위해 깨어 있자. 나의 영적 진단을 위해  아낌없이 말씀과 기도에 투자하자.
 
유튜브를 통해 사랑의 교회 헌당식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노의 포도주를 채우는 일이다. 앨리스터 맥클래스가 축사하는 장면도 보이고 정치인들이 각자 한마디씩 하는 모습들도 있었다. 김장환 목사의 설교는 나를 무척 당황하게 하는데 사랑의 교회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서울이 축복받는다고요?  사랑의 교회가 무너지면 한국 기독교가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래! 아무럼, 3000천 억을 들였는데 할 것은 해야겠지.  더 멋있고 화려하게 교회를  꾸미고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거라!  세상의 반응은 네  무덤에 침을 뱉어줄께이다.
신앙과 믿음에 옳바르게 서야 한다. 나 개인이,  내가 속한  공동체가 처절하게 세속화에 떠내려가 파멸과 소멸을 당하지 않도록 지금 이자리에서 회개와 돌이킴의 결단과 역사가 오늘 예레미아의 메시지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