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장 11-16절
 
11절에 등장하는 가인, 발람, 고라의 인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발람은  이방인의 사제로서  구원과는 상관없이 전형적으로 자기 유익을 따라 행동한 음흉한  라반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가인과 고라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는 것이다.  가인은 제 멋대로의 삶을 살았던 은혜에서 떨어진 자요,  고라는 당과 무리를 져서 모세에게 대항한 반역 공동체의 리더였던 것이다. 이들이 걸어갔던 길은 결국은 죽음과 패망이라는 것이다. 말씀과 주님을 떠난 삶은 아무리 미화하고 포장되어도 멸망이라는 목적지를 피할 수 없다.
 
거듭나기 직전의 나의 삶은 불만과 불안이 팽배하고 뒤엉킨 혼란의 생활이었다. 시카고 다운타운에서의 삶은 화려하게 보였지만, 밤과 낮이 극명하게 교차되는 야누스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불안이란 것이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는 나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퍼뜩 떠 오르는 것이 이렇게 살다간 틀림없이 죽을 때 후회막급하는 모습이었는데,  낙화암 절벽으로 떨어지는 나의 모습을 연상한다는것은 썩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쿠버 다이빙 스타일은 직벽 다이빙이다. 잠수하면 바로 심연으로 이어지는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시작되는데 곧바로 직립자세를 취하고 하염없이 밑으로 내려간다. 오직 상대방을 기준삼아 천천히 수시로 수심과 공기 잔압을 알리는 계기를 보면서 천천히 호흡해야 한다.  3-40미터의 지점에 이르러서 멈추어야 한다.  이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아찔한 장면이 내 오리발 밑에 펼쳐진다.  태양빛이 많이 사라진 거무스레한 아래로  끝없이 내리 꼿는 회색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상승해야 한다. 괜히 호기를 부려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간다면 곧  공기잔압을 알리는 바늘은 바닥을 보일 것이고   허겁지겁 올라오는 중간에 공기가 떨어질 것이다. 
 
그런 이상한 마음을 갖고  다운타운을 떠났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으며 교회도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기게 된 것이다.  태동되어 가는  공동체에서 다시 시작하는 신앙생활에 불을 붙이신 분은 주님이셨다. 그것은 거짓의 삶을 벗어 버리고 자신속으로 진실을 살피는 일이었는데 말씀이 내게 불같이 다가왔던 것이다. 경건을 잃었던 자가 경건의 삶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말씀은 원망과 불만에 쌓여있던 나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하나둘 씩 고치기 시작했다.  깨달음으로 이어졌고  칼끝에 놓여있던 삶에서 회복되었으며 믿음의 도를 따르는 삶으로 바뀌게 되었다. 오늘 유다서는 거짓과 파멸의 삶에서 건짐을 받으라 말한다. 복음의 거부는  인간이 완악하다는 단적인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