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0장 9-21절
 
오늘 본문은 가증하고, 더럽고, 민망하고, 무시무시한 인간의 성과 관련된 죄악에 대해 적나라 하게 얘기하고 있다.  과연 이런 인간들이 이 세상에 있었을까? 할 정도지만, 충분히 사실이었고 지금의 상황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1984-87년까지 미군으로 대구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의 병과로서 병리실험실에 근무했었는데,  대구 시내 캠프 워커라는 부대 내  조그만 보건소에 배치되다 보니 이것 저것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성병클리닉을 맡았는데, 덕분에(?) 온갖 성병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87년 그곳에서 제대하기 전까지 당시만 해도 드문 AIDS보균자가 2명이 내가 근무하던 클리닉에서 발견되어 본국으로 송환되는 일도 있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여러 유형의 성적인 죄의 결과는 반드시 죽음을 동반한다. 자기 피로 돌아가던지 백성중에서 끊김을 당하던지  당시로서 최악의 형벌인 자식이 없는 경우가 되었다. 하나님의 법칙은 정결과 구별된 삶이다. 죄악과의 구별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점이다. 창세기 6장에서 타락된 인간의 행태에 대해 하나님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더럽고 추해져 도처히 돌이킬 수 없는  타락한 인간의 씨를 말려 버리시려는 거룩한 홍수 청소의 계획이 시작된다.  타락의 역사로 시작된 이 세상은  가나안의 풍속을 그대로 물려 받고 있다.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13절에 동성애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석상의 문제를 들어 제기하는 친 동성애  언급에 대한 어떤 주장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고,  이것은 창조 질서에 대한 도덕적인 위반과 정결의 문제에  있어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UMC내에 동성애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이미  떠올랐고 정치적으로 해결의 기미가 없어 보인다. 갈라서는 길만이 서로가 사는(?)  길일  것이다.  개신교가 오히려 천주교나 이슬람교에서의 동성애 태도를 부러워할 정도로 우리는 성경의 기준과 기본이 없는 타락한 교회 시대에 살고있는 것이다.  …긍정하지 않지만, 따뜻하게 맞이하는 교회라는 모호한 정체의 발언이  나는 싫다.
 
나는 진노의 대상이 아닌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화살이 일촉즉발의 상황이 아닌가? 성경은 항상 나를 향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신  균형감각을 잃어서는 안된다.  돌로 맞아 죽기 일보직전에 예수로 인해 생명을 건진 간음한 여인을 바라 보자. 누구나 예수 앞에 서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은혜의 삶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거듭난 우리들은 믿음과 헌신의 삶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