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장 10-17절

바울은 영적전쟁의 현장을 군사적이미지를 사용하여 설명한다. 검도를 1년 열심히 배운적이 있었다. 정말 신문지를 돌돌말아서 일격을 가하면 파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얘기지만,  이번 여행 중 뉴올리안스에서 머무른 호텔에서 첫날 밤 생쥐사건 때문에 난리를 치렀다. 호텔 방에 생쥐라니? 난생처음 당하는 경험인자라 당황했다. 무슨 도구라도 있었으면 저놈에게 일격을 가해 잡았어야 하는데…아쉬움의 찝집함을 남기고 한밤중에 급히 방을 바꾸어야 했다.  호텔의 세련됨, 깔끔함과 상괘함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여행시에는 신문지나 새총을 꼭 준비해 가야 겠다. 다이빙하기 위해 수경을 쓰거나 검도를 하기 위해 호구라는 얼굴보호대를 착용하면 우선 시야가 반으로 가리운다.  검도의 호구는 마치 철장같은 곳에 갇힌듯 기분이 좀 묘해지는데 두개다 시야확보를 위해서는 치명적이다. 부지런히 얼굴을 움직이거나 눈알을 돌려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 나는 다이빙을 하면서 수시로 뒤를 돌아다 보는데 혹시 뒤에서 무엇이 있나하는 막연한 불안함같은 것이라기 보단 스쳐지나가는 상어(?) 같은 큰 물고기나 수중생물들을 놓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바울은 완전 무장을 통해 삶의 전투적 특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주를 위하고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헌신된 삶을 산다는 것은 참 힘들고 절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길을 가야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또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만큼의 각오가 필요하다.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지내와 보니 세상은 맘몬신과의  이원론적 싸움현장 같다. 돈이 있는 것과 없는 것과의 냉혹한 평가와 현실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물질에 너무 빼앗기지 말고 말씀이 주는 진리에 길에 서야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진리에 서서 평안의 복음을 준비하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 하신다. 살기 위해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자신에게 심각하게 물어보고 복음의 길에 서야 한다.

복음은 행위의 운동력을 가졌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려면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세상의 안락과 쾌락의 욕심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분에게 속하기 어렵다. 이것은 구원 받은 자로서 어떻게 이땅에 이미 임한 천국의 삶을 멋지게 살아낼 수 있느냐의 절대적 소명과 사명의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