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22-30절

어제 저녁 아카데미 수상식이 있었다. 영화 ‘기생충’을 기대했었지만 놀랍게도 4개부문에서 오스카 상을 수상했다. 한마디로 자랑스럽다.  나라가 암울하고 세상이 흉흉한데 간만에 기분 좋은 소식에 반짝 희망과 소망을 실을 수 있었다. 기생충은 뉴욕에 갔을 때 딸애내와 근사한 영화관에서 관람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세네마 비스트로라는 것이 생겼나 보다.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인데 덕분에 분주한(?) 영화관람을 했다. 미국에서 한국영화를 나는 자막없이 미국인들은 자막을 갖고 본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한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는 압도적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스토리를 구성하며 화면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번엔 혼자 그것도 음식에 방해받지 않고 다시 보고 싶다.

새벽을 깨워 말씀을 대할 때 그리고 그 뒷배경과 속사정을 더듬더듬 살필 때 다가오는 영적인 감흥이 삶의 희열로 다가온다. 작년 말부터 줄곧 요한복음을 묵상해오고 있는데 오늘 예수님의 대중 만남은 마지막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관심은 성가시며 짜증섞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도면 밝히라는 것이다.  아하! 이것은 교묘한 함정이구나.  예수께서는 이미 수가성 여인이나 맹인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지만, 공적으로는 매우 삼가시고 계시다.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가 아니기에 예수의 신상발언은 그들에게는 로마에 넘기울 근거와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26절에 예수께서는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말씀하신다. 이것은 신학적인 이슈를 불러 일으킨다. 예수의 음성을 들으며 그를 따를 자가 누구인가? 신앙은 눈높이와의 교감에서 출발한다.  마음의 문 밖에서 두드리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공허이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오늘 클라이 막스인 나와 아버지는 하나 라고 30절에 말씀하신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도마는 예수와 그분의 흔적을 보고 믿었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믿게 하시는 성령님이 계시니,  믿음은 믿기만 하면 되는 얼마나 믿는 일인가?  예수님은 양을 보호할 권위를 갖고 계시고 양은 예수님의 소유이며, 양인 나는 예수님의 것이다.  나의 예수님 , 나의 하나님 , 나의 동역자이시고 나의 인생의 동행자이시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은 기막힌 이해못할 관계이지만, 믿음으로 믿어지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연합이 하나님 안에서 성취되었듯이 나의 삶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속에 아버지와 하나님의 고백을 하게 하신다.  오늘 오전에 양로원 사역있다. 덕분에 큐티를 길게 짧게 두번 하는 복을 새벽부터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