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장 1-13절

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어 덕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영광을 우리가 서로 나누어야 하는 필요는 무엇일까?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충만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기 하시는 것이  믿을만한 사실일까?  기독교 신앙의 기본을 흔드는 이러한 질문 앞에 나는 무엇을 변론하거나 어떠한 고백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 10년간 내가 믿고 따라왔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나의 깨달음의 확신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의 실체요, 본체이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최고의 문장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 세상, 사랑, 독생자, 멸망, 영생이라는 키워드의 상관관계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하나님을 100% 사랑하기 위해선 율법을 100% 지켜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의 저주이다. 율법으로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은 막혀버렸다. 우리의 존재가 매우 소중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하고는 알지도 못하고 전혀 상관없는 예수님에게 우리 죄를 뒤집어 씌어서셔 우리가 받을 저주를 전가시키셨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율법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고 죄로인해 죽을 운명에 놓여있는 우리들의 살 길이 예수로 인해 열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를 믿는 자에게 나타나신다. 그리스도의 속량인 것이다.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께서는 의로우시며 예수를 믿는 우리 또한 예수 안에서 의로움이 되었다. 예수의 죽음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의롭게 인정받았고, 그분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이르기 위해 죄없으신 예수를 희생시키시고 예수와 함께 의에 이르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우리가 이것을 믿느냐에 달린 것인다. 우리는 십자가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믿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기독교 신앙에서 회심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그 첫사랑을 계속 유지해야하며  믿을때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내 안에 기쁨과 감격 감사가 넘쳐남은 믿을 때 성령을 받은 결과이고 내 안에 성령하나님께서 매일 나를 이끄신다. 말씀의 사모함은 하나님 사랑의 기본기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가정과 이웃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말로 다 표현 못하는 하나님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구원의 감격 기쁨 환희를 나누고 싶지 않은가? 말씀을 서로 나누는 은혜의 희열과 감동의 열정을 느끼고 싶지 않는가? 세상을 하나님 나라의 일터로 소명과 사명의 일군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다해 섬기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싶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광의 삶을 살고 싶지 않는가? 먹고 마시고 떠드는 일은 이미 식상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더이상 지긋하지 않은가? 그 대신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의 9가지 열매를 갈망하는 삶을 소망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바쳐지는 거룩함이다.